후집(後集)96장은자(隱者)의 맑은 흥취는 모두가 자적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술은 권하지 않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바둑은 다투지 않는 것으로 이김을 삼고 피리는 구멍이 없는 것으로 적당함을 삼고 거문고는 줄이 없는 것으로 고상함을 삼고 만남은 기약하지 않는 것으로 참됨을 삼고 손님은 마중하거나 전송..
후집(後集)95장원리가 없으면 현상도 없으니 현상을 버리고 원리만 잡는 것은 그림자를 없애고 형체만 머무르려함과 같고 마음이 없으면 외물도 없으니 외물을 없애고 마음만 보존하려는 것은 비린 것을 모아 놓고 쉬파리를 쫓으려는 것과 같으니라.<원문原文>理寂則事寂(이적즉사적)하나니 遣事執理者(견사집..
후집(後集)94장내가 사물을 부리는 사람을 얻어도 본래 기뻐하지 않고 잃어도 또한 근심하지 않으니 대지가 모두 그가 노니는 곳이로다. 물건으로서는 나를 부리는 사람은 역경을 미워하고 순경(順境)에 애착을 가지니 티끌만한 일에도 얽매이느니라.<원문原文>以我轉物者(이아전물자)는 得固不喜(득고불희)하..
후집(後集)93장글은 졸(拙)함으로써 나아가고 도는 졸함으로써 이루어지니 이 졸(拙)자 한 자에 무한한 뜻이 있다. 만약 ‘복사꽃 핀 마을에 개가 짖고 뽕나무 사이에 닭이 운다’고 하면 그 얼마나 순박한가. 그러나 ‘차가운 연못에 달이 밝고 고목에 까마귀 운다’는 데에 이르면 비록 교묘하기는 하지만 문득 쓸..
후집(後集)92장눈 내린 밤에 달 밝은 하늘을 대하면 문득 맑아지고 봄바람 온화한 기운을 만나면 뜻이 또한 저절로 부드러워지니 자연의 조화와 사람의 마음이 한데 어울려 간격이 없도다.<원문原文>當雪夜月天(당설야월천)하면 心境(심경)이 便爾澄徹(변이징철)하고 遇春風和氣(우춘풍화기)하면 意界(의계)가 ..
후집(後集)91장백낙천은 말하기를 ‘몸과 마음을 다 놓아버린 다음 눈 감고 되는대로 맡기는 것만 못하다’하였고 조보지(晁補之)는 말하기를 ‘몸과 마음을 다 거두어서 움직이지 않고 정적으로 돌아감만 못하다’고 하였으되 놓아버려서 흘러 넘쳐서 미치광이처럼 되고 거두어 두면 메마를 적막함에 들어갈 뿐이로..
후집(後集)90장만물의 소리 고요한 가운데 홀연히 한 마리 새소리 들으면 문득 온갖 그윽한 멋을 불러일으키고 모든 초목이 시들어 떨어진 후에 홀연히 한 줄기 빼어난 꽃을 보면 문득 무한한 생기가 움직인다. 가히 천성은 언제나 메말라 있지 않으면 정신은 사물에 닿아서 활동하는 것임을 알 수 있도다. <원문..
후집(後集)89장좁은 방 가운데서도 모든 걱정을 다 버리면 어찌 ‘단청기둥에 구름이 날고 주렴을 걷고 비를 본다’는 이야기를 말할게 있으랴. 석 잔 술을 마신 후에 하나의 진리를 깨닫는다면 오직 거문고를 달 아래 비껴 타고 단적(短笛)을 바람에 읊조리는 것을 알겠도다. <원문原文>斗室中(두실중)에 萬慮..
후집(後集)88장속박과 해탈은 다만 자신의 마음 속에 있으니 마음에 깨달음을 얻으면 푸줏간과 술집도 그대로 극락이 되리로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거문고와 학을 벗삼고 꽃과 풀을 가꾸어 그 좋아함이 비록 맑다 하더라도 악마의 방해는 언제나 있으리라. 옛말에 이르기를 ‘능히 그만둘 수 있으면 속에도 극락이 ..
후집(後集)87장정신이 왕성하면 베 이불을 덮고 좁은 방 가운데 있어도 천지의 온화한 기운을 얻으며 입맛이 넉넉하면 명아주국에 밥을 먹은 후에도 인생의 담백한 참맛을 알지니라. <원문原文>神酣(신감)이면 布被窩中(포피와중)에 得天地冲和之氣(득천지충화지기)하고, 味足(미족)이면 藜羹飯後(..
후집(後集)86장천지 가운데의 만물과 인륜 가운데의 온갖 정과 세계 가운데의 모든 일은 속된 눈으로 보면 이지러이 각각 다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모두가 한결 같으니 어찌 번거롭게 구별하며 어찌 취하고 버릴게 있겠는가. <원문原文>天地中萬物(천지중만물)과 人倫中萬情(인륜중만정)과 世界中萬事(세계..
후집(後集)85장금은 광석에서 나오고 옥은 돌에서 나오니 환상이 아니면 진리를 구할 수 없다. 도를 술 가운데서 얻고 신선을 꽃 속에서 만남은 비록 운치는 있으되 속됨을 벗어날 수는 없으리라. <원문原文>金自鑛出(금자광출)하고 玉從石生(옥종석생)하나니 非幻(비환)이면 無以求眞(무이구진)이라. 道得酒中..
후집(後集)84장사람의 마음에 하나의 진실한 경지가 있으니 거문고와 피리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편안하고 즐거우며 향과 차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맑고 향기롭구나 모름지기 생각을 깨끗하게 하고 환경에 얽매이지 않으며 잡념을 잊고 형체조차 잊어버려야 곧 그 가운데서 노닐 수 있으리라. <원문原文>人心(인..
후집(後集)83장천성이 맑으면 곧 배고플 때 밥 먹고 목마를 때 물 마시면서도 심신을 편하게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물욕에 잠겨 어지러우면 비록 선(禪)을 이야기하고 게송(偈頌)을 풀이하더라도 모두 정신을 희롱할 뿐이다. <원문原文>性天澄徹(성천징철)하면 卽饑喰渴飮(즉기식갈음)도 無非康濟..
후집(後集)82장우연히 뜻에 맞아들어야 문득 아름다운 경지를 이루고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야 비로소 참다운 기틀을 보게 된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손진을 가하여 새로 늘어놓으면 그 멋은 문득 줄어들리라. 백낙천(白樂天)이 말하기를 ‘뜻은 일이 없을 때 가장 즐겁고 바람은 자연스럽게 불 때 가장 맑다’고 하..
후집(後集)81장오늘날의 사람들은 오로지 무념(無念)을 구하기에 힘쓰지만 끝내 무념을 이루지는 못한다. 다만 지나간 생각에 구애받지 말고 앞으로의 생각을 맞아들이지 말며 오로지 현재의 인연을 따름으로써 일을 처리해 나간다면 자연히 차츰차츰 무념의 경지로 들어갈 수 있게 되리라. <원문原文>今人(금..
후집(後集)80장세상의 맛을 속속들이 알게되면 비가 되든 구름이 되든 완전히 맡겨 둘 뿐 도무지 눈뜨는 것조차 귀찮아지고 사람의 정을 다 깨닫게 되면 소라고 부르든 말이라고 부르든 부르는 대로 따르고 다만 머리를 끄덕일 뿐이니라. <원문原文>飽諳世味(포암세미)하면 一任覆雨翻雲(일임복우..
후집(後集)79장열사(烈士)는 천 승(乘)을 사양하고 탐욕한 사나이는 한 푼을 다투니 그 인품은 하늘과 땅 차이니라. 그러나 이름을 좋아하는 것 역시 이익을 좋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도다. 천자는 국가를 경영하고 거지는 조석밥을 부르짖으니 그 직위는 하늘과 땅 차이니라. 그러나 마음을 애태움이 목소리를 애..
후집(後集)78장진공(眞空)은 공(空)이 아니니 형상에 집착함도 진실이 아니고 형상을 깨트림도 또한 진실이 아니니라, 묻노니 석가는 무어라 하셨는가. ‘속세에 있되 속세를 벗어나라’하셨으니 욕망을 따르는 것도 괴로움이요 욕망을 끊음도 역시 괴로움이다. 우리가 얼마나 수양을 잘하는가에 달린 것이니라.<..
후집(後集)77장나무는 뿌리로 돌아가기에 이른 뒤에야 꽃과 가지와 잎이 헛된 영화임을 알게 되고 사람은 관 뚜껑을 덮을 때가 이른 뒤에야 자손과 재물이 무익한 것임을 알게 되리라.<원문原文>樹木(수목)이 至歸根而後(지귀근이후)에 知華萼枝葉之徒榮(지화악지엽지도영)하고 人事(인사)는 至蓋棺而後(..